2008년 05월 12일
쿠레나이 2권 - 부디 찌질함의 패턴은 여기까지.

변함없는 <쿠레나이> 2권. 이 이야기는 상당히 묘한 구석이 있는데, 일본 무협지의 현대판 같은 설정에서 무협스러운 배틀을 벌이면서도 주인공 쿠레나이 신쿠로라는 캐릭터는 하염없이 무겁고 우울하고 궁상스러우며 어딘가 일반소설틱한 감상에 빠져 고뇌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권에서도 쿠레나이 신쿠로는 '내 장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요즘 사회는 왜 이모양일까'라는 현대 일본인 고등학생 혹은 젊은이들이 빠져들 법한 고민을 정말 우울하고 궁상스럽게 늘어놓는다. 다른 라이트노벨이라면 3줄로 충분했을 이런 부분들이 10페이지, 20페이지도 넘게 계속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무게감이 있어보인다.
물론 이건 환상이다. 이 작품에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자아내야 할 무게감은 손톱만큼도 없다. 안타까울 정도다.
라이트노벨이라서가 아니다. 액션소설이라서가 아니다. 무협스러운 분위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작품 자체의 무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다만 저런 고뇌 자체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얄팍하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져서 궁상을 떨면서 찌질대다가 7살 짜리 꼬맹이의 전화 한통에 기사회생한다니 뭐냐 이 얄팍함은. 차라리 두 사람의 관계를 좀 더 고민해라. 그들 사이의 감정에 좀 더 골몰해라. 그리고 보여줌으로써 납득하게 만들어다오. 그렇지 못하기에 이번 권의 태반을 차지하는 '쓸데없는 찌거기'들은 분량만 많을 뿐 포테이토칩보다도 더 얄팍한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는데 고작 이거냐. 좀 더 골몰해서 결론을 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얄팍한 고뇌 밖에 없는 작품에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애당초 그것을 사소한 장치로 이용할 뿐, 작품 자체에서 다른 맛을 추구하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런데 작가는 저 얄팍한 고뇌의 찌꺼기를 굉장히 정성들여서 이야기하고 있다. 뻔하고 의미없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아주 공들여서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는 사람을 납득하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저런 고뇌의 끝에 도달하는 장면은, 그 속에서 쿠레나이 신쿠로가 보여주는 행동은, 모두가 납득이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다. 그렇기에 이번권은 실망스러웠다. 더 웃기는건 그런 주제에 재미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권도 재미있다. 저런 부분에 화가 나는데도 재미있게 읽고 '3권은 언제 나올까?'하고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의 심적인 부분이 문제일 뿐 글솜씨는 상당하다.
2권의 패턴은 1권과 똑같다. 쿠레나이 신쿠로는 괜히 무게를 잡아가면서 결국은 찌질하기 이를데 없는 궁상을 떤다. 사방으로 찌질이의 오라를 흩뿌리고 있자 안경미소녀동급생, 선배이자 스승의 따님인 미소녀, 7살 로리 히로인 등이 그를 위로해준다. 이런 고마운 상황에도 전혀 각성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모두 내가 떠안아야 할 몫'이라고 되지도 않는 잘난척을 해가면서 죽을 뻔한다. 1권 마지막에서 보여준 멋진 모습은 어디로 간 거냐. 심정적으로 갈등하고 고뇌한다고 할지라도 해결사로서의 모습은, 최소한 혼란스럽기는 해도 레벨업된 구석을 보여줘야할 것 아닌가. 근데 적과 최초로 조우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직전까지 찌질대면서 죽을 뻔하고 엎드려 꿇어서 빌고 두들겨맞아서 부숴질 뻔하다가 결국 전화 한통 받고 멋지지도 않은 팔꿈치의 뿔 꺼내더니 전투력이 수천배로 뛰어올라서 고릴라 같은 적을 간단히 때려눕히고(화가 날 정도였다) 또 하나의 적은 미소녀라서 그런지 설교만 하고 끌고 나와서 다음을 기약한다.
이봐. 네놈 당장 자살해버려라. 살아있을 가치도 없다. 순간적으로 쿠레나이 신쿠로라는 찌질이에게 그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이것도 일종의 감동이니까 어떤 면에선 훌륭하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잠시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 후에는 화가 난다. 목숨의 소중함이 어쩌니 상관없는 사람들이 어쩌니 해놓고 다 죽여놓은 년놈 중 하나는 미소녀라서 미워하지도 못하고 용서해버리는 거냐. 설교 조금 하면 땡인 거냐.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사실 그녀가 한 일 중에는 이렇게 좋게 생각할 만한 일도 있어'라고 변명여지까지 만들어놓는 작가. 이것은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이도저도 아니게 만드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쿠레나이 신쿠로의 행태는 '사이버 포뮬러 SAGA'의 카자미 하야토가 생각난다. 전작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은 하야토가 정말로 똑같은, 한치의 발전조차 없는 찌질함에 빠지는 패턴은 2권의 쿠레나이 신쿠로 그 자체가 아닌가. 그리고 그래서 '사이버 포뮬러 SAGA'도 욕을 먹었지.
설령 고뇌하고 흔들린다고 할지라도 발전된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이건 납득할 정도로 성장한 모습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잿바퀴만 굴리는 다람쥐와 똑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낸 것은 작가가 높은 비중을 두고 공을 들여서 써내려간 고뇌 부분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기름기로 취급해서 좍 빼버리고 분량을 6할로 줄여서 상쾌한 무협액션물로 만들어놓았다면, 작가의 안이함과 단호하지 못한 부분, 이도 저도 아닌 부분에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서하지 못할 것은 용서하지 못할 것으로 남겨두어라. 캐릭터가 미소녀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용서하지 마라.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고뇌 따윈 하지 마라. 고뇌 끝에 도달한 것이 찌질함보다 더한 쓰레기장이라면 막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처음부터 일반소설 생각나는 느낌으로 궁상을 떨게 시키지 말던가.
3권은 과연 어떤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1권, 2권에서 반복되어온 패턴이 3권에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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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12 20:36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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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품을 보기위해 고민하던도중 계속한 호평만 보다가 이렇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보기는 또 처음이라서요.
아무래도 최종판단은 직접 읽고 하는것이 가장 적절하겠지만 확실히
이런식의 전개라면 읽다가 집어던질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 저 패턴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요 OTL
'전파적인 그녀'로 호감도가 올라갔던 작가라서 1, 2권까지
구입했는데...3권까지는 안 가려고 안간힘 쓰는 중입니다.
유월 // 3권은 일단 볼텐데 만약 또 이모양이면 때려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