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도라! 4권 - 조금은 진전이 있는 이번권.

벌써 4권까지 나온 '토라도라'. 아마 일본 라이트노벨 중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7권 + 스핀오프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분간은 빠른 출간속도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니, 일단 방영이 시작되면 한국에서의 인기도 한단계 더 오를 것 같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러브 코메디다. 아니, 기본적으로가 아니고 완전히 러브 코메디다. 굳이 두글자를 덧붙이자면 '청춘'. 나는 이 작품을 '청춘 러브 코메디'라고 부르고 싶다. '토라도라'에는 비현실적인 메이드 캐릭터도 없고 고양이귀를 단 이상한 종족도 없으며 전투미소녀가 도시한복판에서 주인공 눈에만 띄게 살벌한 싸움을 벌이지도 않는다. 캐릭터들이 하는 짓이 만화적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 일러스트 달고 나오는 라이트노벨임을 생각하면 허용범위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근접도 하지 않는 편이고 이야기도 현실의 경계를 크게 일탈하지 않는다.

일러스트는 무척 사랑스럽다. '키노의 여행'과 '엘리슨' 시리즈에서 일러스트를 맡은 쿠로보시 코하쿠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구석도 있는데, 색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개성이나 퀄리티는 충분하다. 컬러도 흑백도 멋진 수준인데다가 작가후기 뒤에 일러스트레이터 후기가 그림과 함께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비해 두드러지는 점이 뭐냐고 하면 역시 캐릭터다. 타케미야 유유코는 '토라도라'에서 요즘 라이트노벨에서 유행하는 츤데레니 뭐니 하는 개성의 종이조각에서 벗어나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의 반응도 보면 뭐가 모에하다던가 하는 식의 오타쿠식 표현을 쓰는 일이 별로 없다. 인물들의 내면도, 그들의 감정도 모두 풋풋하고 미숙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그들의 버둥거리는 모습을 답답해하면서도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번 4권에서는 마침내 다섯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전권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여름방학에 바닷가로 놀러가게 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지라도 서로 조금씩이나 진심을 내보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그리고 자기자신조차 확실히 알 수 없었던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사실 이번권 자체는 좀 기대에 못 미쳤다. 바다로 갔으면 좀 더 적극적인 이벤트를 많이 보여줬어도 좋을텐데 너무 평범했다고나 할까. 물론 이것도 그 다섯 명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서 키타무라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열외되어 있고(언제쯤 안으로 들어올 것인지 궁금하다) 미노리는 이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결정적인 사건이나 드라마가 없다 보니 읽는 내내 그저 무난하게 캐릭터들이 노닥거리는 것만 보게 된다. 1, 2, 3권에 비하면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보다보면 여러가지로 국산 라이트노벨과 비교를 하게 되는 부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앞에도 언급한 '캐릭터'고, 또 하나는 '분량'이다.

요즘 나오는 국산 라이트노벨을 보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대부분의 작품이 캐릭터가 굉장히 취약하다. 다 일본에서 본 듯한 '패턴'을 그대로 가져와서 다른 형상으로 빚어냈을 뿐이지 그 이상으로는 안 느껴진다고 할까. 심지어 지나치게 일본 정서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라 한국적으로 보기에는 현실성이 완전히 결여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캐릭터도 많다. 캐릭터가 인물로 느껴진다는 점에선 캐릭터 위주의 소설이라는 라이트노벨보다도 예전 판타지나 무협이 훨씬 나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지.(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대여점 시장에서 양산화되면서 그런 작품을 찾기도 어려워졌지만) 일러스트로 먼저 어필하는 라이트노벨의 특성상 이런 흐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니 앞으로 개선되어나갔으면 한다.

또 하나는, 국산 라이트노벨 치고 분량 적은 책이 거의 없다. 특히 요즘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라 라이트노벨을 쓰는 작가들 사이에서 경쟁이라도 붙은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건 사실 독자로서는 가격대성능비를 생각하면서 즐거워해야될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점점 더 읽기가 부담된다. 그리고 두꺼운 책을 사서 읽었을 때 그만큼의 만족감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좀 쓸데없는 부분을 쳐내고 분량을 줄여서 깔끔하게 내줬더라면 훨씬 더 부담없고 재미있게 읽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토라도라의 분량은 후기까지 포함해도 고작해야 230~260페이지 가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국산 라이트노벨의 모 타이틀이 비슷한 분량으로 나왔을 때와는 달리 '이 가격에 이 분량이라니 너무 적은거 아닌가요?'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의미를 출판사와 작가 모두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토라도라' 4권도 아주 좋았고, 5권을 기다리고 있다. 본편은 갈수록 평이 좋아지고 있어서 5권도, 6권도, 7권도 부담없이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하다. 다만 스핀오프는 안 보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도 보이던데 과연 어쩌는게 좋을지?


by 제라르 | 2008/05/12 04:54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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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타즈 at 2008/05/12 08:20
분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만족이 늘지 않는다는 부분 공감합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요.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압박으로 다가오는
책도 분명이 있으니까요.

...그것이 흡입력없이 구름같이 떠가는 이야기류라면 더욱 더 그렇겠지요.

토라도라! 의 경우는 좀 더 두꺼워져도 제대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입니다.
허나, 타케미야씨의 절묘한 호흡조절패턴덕분에 항상 300p를 넘지 않는 절묘한
선을 그어준다는것이 또다른 매력이겠지요.

스핀오프 경우에는 전 속는셈치고 구매했습니다.
예전 타무라군 외전에서도 약간 실망한 기억이 있는데 일단... 이라는 느낌이지요
Commented by 제라르 at 2008/05/12 16:32
타즈 // 좀 더 쓸데없는 부분을 쳐내고 조여주면 몰입도가 올라갈 수 있을 책들이 많습니다. 지금 국산 라이트노벨은 마치 몇년 전에 5분짜리 내용을 20분으로 늘려만들던 밀도없던 일본 애니메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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