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 - 거대새우의 습격

대략 한달쯤 전에 같은 작가의 작품인 '하늘 속'을 극찬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바다 밑'을 카트에 담았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작가의 출세작인 도서관 시리즈의 2탄, '도서관 내란'이 출판된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바다 밑' 역시 '하늘 속'과 마찬가지로 NT노벨 브랜드로 나왔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라이트노벨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석을 찾을 수 없다.하드커버에 9800원이며 페이지당 25줄로 470페이지의 꽉 찬 느낌을 선사한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지루한 구석이 없이 잘 읽힌다는 장점까지 더해지면 가격대성능비는 최고가 아닐까.

일러스트도 없고 영상화된 작품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라이트노벨팬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지만('도서관 전쟁'도 인터넷 판매지수가 크게 높지는 않더라) 정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하늘 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작품도 정말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본 일본 특촬물 '가메라2'가 생각났는데 작가가 괴수물 팬이라 그런지 작중의 여러 요소가 매칭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메라2'에는 가메라의 적으로 레기온이라 불리는 엄청난 수의 적이 등장하는데, '바다 밑'에는 가메라 같은 정의의 괴수는 나오지 않지만 대신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새우가 등장한다. 거대새우라니, 이거 정말 참을 수 없지 재미있지 않은가? 실로 B급컬트적인 요소의 폭발이다. 제발 부탁이니 한국에도 이런 센스 발휘해주는 작가가 나와줬으면 싶을 정도로. 물론 그런 요소가 매력적이라는 것이지 내용까지 그렇게 가버리면 곤란하고. 그외에도 '가메라2'는 자위대가 홍보를 위해 실제 장비를 지원해준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장갑차 등이 엄청 현실감 있고 자위대 군인 중에 엄청 멋진 캐릭터도 한명 있다. 괴수물을 지원해서 자위대를 홍보할 생각까지 한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군대가 정말 인기가 없긴 없다는걸 알 수 있어서 자위대가 불쌍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 바다 밑으로부터 나타나 사람들을 덮치는 거대새우의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고전하는 모습은 정말로 눈물겹다. 현대화기의 위력을 생각하면 금세 처리할 수 있는데도 경찰이기 때문에, 그런 중화기가 지급되지 않는 경찰병력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위대가 함부로 나설 수 없다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정말로 눈물겹다. 실제로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마지막에 자위대가 출동했을 때는 정말로, 그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한편 주인공 일행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구출될 때까지 폐쇄된 잠수함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15소년 표류기' 같은 느낌을 주는데(사실은 그보다는 애니메이션 '무한의 리바이어스'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어차피 원류는 저쪽이지만) 아이들이 좀 더 어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주인공들은 어른에 군인이다 보니 마치 '말 안듣는 어린애들을 어떻게든 통제해야 하는 담임선생님의 고충'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 갈등관계는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는 않으면서 적당한 수준으로 완급을 조절해서, 즐겁게 읽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도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 정도가 이 작품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고, 아마 그것이 아리카와 히로의 스타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거기에서 마지막에는 로맨스로 연결되는 것까지 말이지.

이젠 '소금의 거리'와 '도서관 내란'만 읽으면 국내 출판된 아리카와 히로의 작품은 다 읽는 셈인데, 그것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아쉽다. 도서관 시리즈도 좋지만 '하늘 속'이나 '바다 밑' 같은 작품 좀 다시 안써주려나?

by 제라르 | 2008/09/28 22:03 | 번역장르소설 | 트랙백 | 덧글(4)

홀리랜드 17권 - 그들이 도달하는 곳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인데 다음권이 끝이라고 해서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을 만화를 통해 줄줄 늘어놓아서 리얼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는 점이 매력인 만화고, 난립하는 다른 학원폭력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서 초반에는 딱히 그림에 정이 가지 않았는데도 빠져서 보게 됐다. 게다가 갈수록 점점 그림의 표현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정서가 점점 더 설득력 있게 와닿아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번권에서는 몇권째 계속된 유우와 쇼고의 갈등이 결말이 났다. 현실적으로 그 결말은 쇼고에게 불행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자유로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면서 찾고 싶어하는 것을 쇼고는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유우 역시.

최종권에서 유우와 맞붙을 킹의 경우는 '홀리랜드'라는 작품 내에서 상당히 독특한 포지션을 가진 캐릭터다. 성격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의 격투스타일이 중국권법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작중에서 나온 격투기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중국권법이다. 그래서 작가가 과연 킹의 격투스타일을 어떻게 묘사해줄지 꽤 관심이 간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이미 연재가 끝난 상황이라고 하니 단행본도 곧 볼 수 있지 않을까. 예고편을 통해 최종권은 대폭 볼륨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한층 더 기대하고 있다.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소년들이 도달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by 제라르 | 2008/09/28 21:37 | 만화 | 트랙백 | 덧글(0)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씨 - 발상이 즐거운 에피소드집

웹상에 가끔 이야기가 올라오길래 궁금해져서보게 된 책. 작가는 '바카노!'로 유명한 나리타 료우고. 유감스럽게도 난 그의 작품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이번이 처음으로 그와 만난 셈이지만.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는 기본적으로는 네 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이다. 하리야마라는 인물이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연결성이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하다. 사실 하리야마는 작중에서 거의 비중이 없고, 하는 일도 없고, 안나와도 상관없지 않나 싶은 그런 인물이다. 하지만 세 편째까지는 각각이 독립되어 있다가 마지막 단편은 각각의 에피소드에 모두 얼굴을 내밀었던 하리야마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그것 자체는 좋았지만 이럴 거면 조금은 인상 깊은 캐릭터로 만들어줬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고(그래도 각각 다 분량이 제법 된다. 사실 단편집이 아니고 중편집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단편은 '마법소녀 893호'와 '친애하는 빛의 용사님'이다. 둘 다 멋지게 정신나간 느낌이라 좋다. 첫번째 단편인 '도시 레전드'는 좀 밋밋한 느낌이었고. 결말은 그냥 세 개의 에피소드가 하나로 모여 결말이 났다는 느낌이고.

진지한 고찰이나 가슴을 찌르는 감동, 혹은 앞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드라마틱함은 없지만 재미있는 발상과 괜찮은 센스가 즐거웠다. 다음에 책을 구입할 때 작가의 장편도 한번 봐야겠다.

by 제라르 | 2008/09/28 21:26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0)

마왕 - 독특하긴 한데 마치 짤린 소년만화 같은

현재 만화판으로도 2권까지 나와있는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 중에 하나다. 내가 두번째로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생각한 것은 '표지 정말 촌스럽다'였고, 다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이사카 코타로, 당신은 소년만화 작가가 아니잖아요?'였다. 솔직히 실망했다.

내용은 30보 안에 있는 인물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대사를 마음대로 말하게 할 수 있는 능력자인 형과, 10분의 1 확률이라면무조검 맞추는 참 세상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자인 동생의 이야기이다. 형의 이야기가 전반을, 동생의 이야기가 후반을 차지하는데 뭘 쓰고 싶었는지는 알겠지만 한권의 소설로서 성립하기에는 구성이나 마무리가 지나치게 어설프다. 제목에 써둔대로 마치 중간에 인기 없어서 짤려버린 소년만화 같은 느낌이 든다.

작중에서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무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드라마가 명쾌하지 않아서야 소용이 없지 않을까. 형은 뭔가 해보기도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죽어버리고, 동생은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을 위해 돈을 벌어둬야겠어. 나의 능력으로 경마장의 얼짱이 되자'하면서 돈을 모으면서 끝나버린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느낌인데 독자가 보기엔 '아니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하란 말야!'하고 소리쳐주고 싶어진다.

촛불집회를 빗댄 내용이 나오는 것은, 한국인 독자로서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사람은 어떤 자세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가. 그것은 일본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매우 민감하고 위험한 소재를 다뤄놓고, 그에 대한 결론을 내기는커녕 소설가로서는 가장 큰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가상 시뮬레이션조차 해보지 않고 끊어버린 것은 지나치게 안이하지 않나. 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도망쳐버린 느낌이다. 이 책은 상, 하권 구성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엔딩에서부터 시작된변화가 일본을 덮치고, 세상이 무섭도록 변화하는 충격을 독자에게 전달해주면서 주인공이 그 속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렸으면 이렇게 허무하지 않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을 고른 것을 후회한다. 이사카 코타로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깎여나갔다. 그래도 또 다른 책을 골라서 보겠지만.



ps. 그나저나 동생인 지로의 능력은 정말 반칙이지 않나? 10분의 1 확률에서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면 그건 돈 벌 수단이 도박계열에서는 무궁무진하다는 소리다. 세상 정말 만만하게 보고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탐나는 능력이다. 그리고 사실 지로가 이 능력을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처럼 바보 같은 순수함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일 없이 어른스럽게 돈벌이에 쓰는것이 이 소설에서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이기도 했다.


by 제라르 | 2008/09/22 18:41 | 번역소설 | 트랙백 | 덧글(0)

스타일 - 호오, 이게 1억원 짜리 칙릿소설인가

상금이 무려 1억원이나 된다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사실 한국판 칙릿소설이라고 하길래 크게 관심을 안두고 있다가, 칙릿소설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이 있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본 후 약간 관심이 생겨서 기웃기웃, 그러다가 워낙 웹상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길래 결국 읽게 되었다.

사실 보기 전에 꽤 각오를 했다. 워낙 시니컬하게 욕하는 평이 많아서.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최대한 덜 실망할 준비는 했다. 그럴거면 왜 보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니까.

뭐 사실 칭찬하는 평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보다 소설을 가볍게 접하고 가볍게 읽는, 칙릿소설을 좋아하는 좋아하는 독자층에게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 싶다. 1억 짜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타이틀이 있지만 꾸준히 호평이 나오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물지는 못했을 것이다. 벌써 수십쇄를 찍었던데 판매량이 굉장해보인다.

그리고 다 읽고 난 결론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은데?'라는 것이다. 그렇게 악의적으로 깔 것까지는 없지 않나 싶은 글인데. 내가 워낙에 관대한 독자인 건가?

당선작들을 두고 아예 세계문학상을 욕하는 목소리도 꽤 많이 보였는데, 그런 글들을 보다보면 대부분 세계문학상은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고결하지 못하다는게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칙릿소설이 각종 문학상들을 휩쓸고 있는 요즘, 세계문학상의 성향이 보다 상업적이고 통속적이라고 해서 욕을 먹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물론 성향과는 별개로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면 욕을 먹어 마땅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려 1억원을 상금으로 내건 문학상의 수상작치고는 질이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즉 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보기엔 약간 핀트가 어긋난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더 이야기하다가는 삼천포로 빠질 것 같으니 이쯤해두겠다.

이 소설은 내가 로렌 와이스버거의 '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 감상을 쓰면서 '한국이었다면'이라고 가정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 가상의 패션지 'A'의 기자인 주인공이 각종 패션 아이템은 물론이고 장동건이나 이나영 같은 굵직한 연예인들의 이름을 마구 언급하는 것. 참으로 한국적이긴 하다만 실명들이 가감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다소 심란하다. 미국인들이 로렌 와이스버거의 소설을 볼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조금 더 멀찍이서 유명 브랜드나 디자이너,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걸 당장 손에 잡히고 주인공이 만나고 연관되는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으니 조금 난감하지 않나. 본래 의미로서의 칙릿이 아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인해 퍼진 칙릿소설의 이미지에는 아주 잘 부합하는, 사실 한국판 마이너 카피로 보이는 내용이지만 아무래도 과감성이 어설프다. 이럴거면 조금 더 거리를 두는 느낌으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브랜드 이름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이름들에 일일히 작은 따옴표를 붙여놓은 것도 거슬린다. 이런 소설을 쓸거면 로렌 와이스버거처럼 그런건 여상스럽게 처리하는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외에 거슬렸던 것은 역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본제목 그대로 써두었으면서(덤으로 그건 영화일뿐 현실은 그렇지 않아 운운까지. 그냥 미국과 한국의 현실 차이라고 하지 이건 무슨 오만한 한마디인지?) '무릎팍 도사'는 교묘하게 바꿔서 언급하는 것도 참 간사해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멀리 떨어진 미국작품은 꺼리지 않으면서 가까운 우리나라 TV 프로는 조심하는 그 마음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내용은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로맨스가 많이 부족한데, 로맨스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나도 해피엔딩은 좋아하지만 다 보고 나서 묘하게 찝찝한 것은 역시 주인공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성수대교와 어린 시절의 추억 운운하며 빚을 내서라도 패션아이템은 손에 넣으면서 동시에 기부도 하고야 말겠다는 주인공의 이중성은, 너무 유치해서 웃긴다. 뭘 나타내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참으로 어설픈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 점들을 싹 제거하고 봤으면 오히려 공감하기 쉬웠을 것이다. 자기연민은 현실적인 선에서 그쳐야지 이렇게 폭주해서야. 게다가 남자가 맞선 자리에서 사라진 이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고. 그런 주제에 나중에 사실 널 좋아했어 운운하는 건 전혀 극적이지 못해서 이미 한편의 개그가 아닌가. 그외에도 소설이 그냥 주인공이 이 일 저 일 받으면서 투덜거리다 보니 몇가지 딱 감정이 고조되지는 않는 사건 몇개 나오고 결론이 나서 끝나버린다는 느낌이다. 클라이맥스가 없다는 이야기. 극적인 부분이 있어야 할 설정을 갖고 극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꽤 큰 약점이다. 괜히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결말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커버할 신선한 구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태까지 단점만 죽 늘어놓았는데, 물론 장점도 있다. 사실 난 제법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적어도 한권 다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으니 칭찬할 거리가 없을 리 없지 않은가.

저런 부분들을 빼고 보면 주인공이 열심히 움직이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해주고 싶어지고 패션업계의 이야기는 역시나 흥미로웠다는 것.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읽을 때도 역시 주인공의 드라마에 관심을 두고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세계, 뉴욕의 패션업계라는 신세계를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이 소설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한국의 패션업계는 미국의 패션업계와는 다르니 다른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소설에 어떤 고고한 작품성, 문학성, 인간적인 성찰을 바란다면 고이 접어서 쓰레기통에 넣어두라고 하겠다. 하지만 단지 즐겁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겠다면 나는 한권 읽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달콤한 나의 도시'보다 이쪽이 낫다. 좀 더 스트레이트하거든.

by 제라르 | 2008/09/19 03:32 | 한국소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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