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1일
원환소녀 1권 - 힘들었다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물 설정 말고, 세계관 설정.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물(혹은 오컬트물)이라면 현대와 신기한 일들 사이를 해석하는 세계관이 작품의 색깔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는 아주 좋다. 우리 세계와 인접한 2천개의 마법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의 주민들은 전원 마법사이며, 마법사들은 각기 다른 법칙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마법사들에게 이 세계는 지옥이고, 인간들은 모두 악귀인데 그 이유는 그저 관측당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마법이 소거되는 마법이 허락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
기본 세계관은 좋지만 나스 키노코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냥 일본에 원래부터 그런 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개념들을 잔뜩 도입해서 작가만 알아먹을 것 같은 복잡하고 별 의미는 없어보이는 관념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는 점은 별로. 그것까지 매력으로 살려야 의미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고, 그런 점 때문에 그 설정이 가진 매력이나 개성은 작중에서는 전혀 어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장력이 난잡해보여서 좋은 편이라 글맛으로 줄줄 읽히느냐? 절대 아니다. 형편없다. 한문장 넘어가는 것이 계단 열개를 올라가는 기분이다. 그럼 장면을 그려내는 묘사력은 좋아서 전투가 박진감 넘치게 읽히느냐? 절대 아니다. 형편없다. 이런거 보고 일본 라이트노벨은 한국 대여점 소설보다 낫단 소리는 제발 하지 말자; 이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십만 단위로 드글거릴 것 같다.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단순무식한 것 같은 문장이라도 잘 읽히고 뭔 상황인지 잘 알아먹을 수 있기만 하면 이것과 비교할 때 노벨문학상은 못되도 청소년 문학상은 받겠다.
이야기 쪽으로 가면 더 얄팍하다. 20대 남자 상대로 초등학생 꼬맹이를 노골적으로 히로인으로 밀어붙이는 전개는 쿠레나이 이후의 로리콘 경향인가 싶었고, 드라마가 전혀 몰입할 수 있는 힘을 갖고 굴러가질 않는다. 그저 난잡하고 붕떠있다. 서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다들 나쁜 놈들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세계를 말아먹고 멸망을 가져와도 그놈은 나쁜놈이 아닌거다. 그놈은 착하고 순수하니까.(아, 나쁜 녀석이 둘 있긴 있다)
한권 읽기가 정말 힘든 소설이었다. 그저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읽었다. '종말의 크로니클' 이후로 최악의 지뢰를 밟은 이 기분. 물론 그쪽은 재미없는 것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훨씬 고단수였지만.
# by | 2009/11/01 14:53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