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환소녀 1권 - 힘들었다

일러스트가 강각의 레기오스의 바로 그 작가다. 물론 소설 작가는 다르다.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물 설정 말고, 세계관 설정.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물(혹은 오컬트물)이라면 현대와 신기한 일들 사이를 해석하는 세계관이 작품의 색깔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는 아주 좋다. 우리 세계와 인접한 2천개의 마법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의 주민들은 전원 마법사이며, 마법사들은 각기 다른 법칙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마법사들에게 이 세계는 지옥이고, 인간들은 모두 악귀인데 그 이유는 그저 관측당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마법이 소거되는 마법이 허락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

기본 세계관은 좋지만 나스 키노코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냥 일본에 원래부터 그런 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개념들을 잔뜩 도입해서 작가만 알아먹을 것 같은 복잡하고 별 의미는 없어보이는 관념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는 점은 별로. 그것까지 매력으로 살려야 의미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고, 그런 점 때문에 그 설정이 가진 매력이나 개성은 작중에서는 전혀 어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장력이 난잡해보여서 좋은 편이라 글맛으로 줄줄 읽히느냐? 절대 아니다. 형편없다. 한문장 넘어가는 것이 계단 열개를 올라가는 기분이다. 그럼 장면을 그려내는 묘사력은 좋아서 전투가 박진감 넘치게 읽히느냐? 절대 아니다. 형편없다. 이런거 보고 일본 라이트노벨은 한국 대여점 소설보다 낫단 소리는 제발 하지 말자; 이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십만 단위로 드글거릴 것 같다.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단순무식한 것 같은 문장이라도 잘 읽히고 뭔 상황인지 잘 알아먹을 수 있기만 하면 이것과 비교할 때 노벨문학상은 못되도 청소년 문학상은 받겠다.

이야기 쪽으로 가면 더 얄팍하다. 20대 남자 상대로 초등학생 꼬맹이를 노골적으로 히로인으로 밀어붙이는 전개는 쿠레나이 이후의 로리콘 경향인가 싶었고, 드라마가 전혀 몰입할 수 있는 힘을 갖고 굴러가질 않는다. 그저 난잡하고 붕떠있다. 서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다들 나쁜 놈들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세계를 말아먹고 멸망을 가져와도 그놈은 나쁜놈이 아닌거다. 그놈은 착하고 순수하니까.(아, 나쁜 녀석이 둘 있긴 있다)

한권 읽기가 정말 힘든 소설이었다. 그저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읽었다. '종말의 크로니클' 이후로 최악의 지뢰를 밟은 이 기분. 물론 그쪽은 재미없는 것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훨씬 고단수였지만.


by 제라르 | 2009/11/01 14:53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1)

헬릭스 : 악마포식자 1, 2권 - 간만의 퇴마물

이 작품을 볼 때 걱정해야 할 점은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바로 작가 이름 석자 임경배를 보고 이 작품이 과연 계속될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더 크리처는 커그의 인터넷 연재로나마 완결을 보았지만 인드림스와 웜슬레이어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로 보면 이미 원고가 4권까지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생계를 걸고 있는지라 꽤 빨리 집필되고 있다고 한다. 일단 믿고 보기로 했다. 완결된 후에 보자, 하면서 외면하면 순식간에 조기종결당하는 것이 대여점 시장이니까, 제발 끝까지 써달라고 응원하는 차원에서라도 일단 봐둘 필요가 있었다.

라이트노벨의 영향인지 몰라도 최근 현대물이 많이 보이는 느낌이다. 골든노블에서 나온 도시전설, 청어람에서 나온 워메이지, 마루에서 나온 슈퍼 파워 코리아까지. 그중 이 작품은 퇴마물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퇴마록이나 귀신과의 싸움이 아니고, 1999년에 사실 세상이영적 파멸을 겪었고, 열린 지옥문으로부터 악마들이 기어나와서 활동하고 있다는 설정 하에서 그들끼리의 싸움이 벌어지는 내용이라 이능력 배틀물스러운 느낌이 묻어난다.(에디슨의 발명이 그런 식으로 세상을 구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글 자체는 임경배 작가 특유의 센스가 매력을 발휘한다. 다른 것과 비슷한 것 같지만 확실히 다른 재미있는 설정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현대인의 부정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극대화시켜놓은 주인공 하민의 행동으로 즐거움을 준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사로잡혀서 단숨에 읽어가는 맛이 아니라 계속 즐겁게 키득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맛이 이 작품에는 있다.

1권은 무난한 출발을 보이는가 싶더니 2권에서 '퇴마대대'가 등장하면서 센스가 폭발한다. 정말이지 군필자들이라면 웃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한국 작품이 아니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부분이기도 하다. 퇴마를 목적으로 하는 군대에 군대 갈 나이도 안 된 고등학생 미소녀가 나와서 미니 스커트 군복 입고 엉터리 경례를 하는 일은 없다. 한국 군대의 실상을 적당히 리얼하게, 그러면서도 소설을 위해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고 만들어낸 퇴마대대는 2권의 핵심이며 이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포인트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해서 주인공 하민이 군대에 소속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 고등학생이다.)

원고가 다 되어 있다고 하니 3권도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기를 바란다.

by 제라르 | 2009/10/19 16:50 | 한국장르소설 | 트랙백 | 덧글(1)

모래선혈 - 전작보단 못하다


'얼음나무 숲'으로 명성을 얻은 하지은 작가의 노블레스 클럽 두번째 작품. 전작에서는 음악가의 이야기를 그리더니 이번에는 작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다음번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그릴까 궁금한데, 다음 쪽에서 이미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이 연재됐으니 찾아가보면 알 수 있겠다.

문장은 여전히 좋다. 하지만 전작보다는 나쁘다. 문장 하나하나의 질이 어떻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주는 느낌에 관한 것이다. 전작은 음악의 도시를 거니는 분위기 속에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는데 '모래선혈'은 배경이 메말라있어서 그럴까, 그때만큼 매혹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작중에서 천재라 일컫어지는 작가의 작품 일부를 발췌해놓은 부분들이 별로 매력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도 감점요소. 사실 그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집중력을 오히려 깨먹었다. 구현할 수 없는 천재를 조악하게 실체를 만들어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문장 너머에 있는 아득한 존재로 감추어놓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 자신이 작중에서도 지적한 부분인데, 알고 있으면 고치는 게 어떨까 싶었던 부분은 끝마무리가 극단적으로 약하다는 점이다. '얼음나무 숲' 때의 결점이 여기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끝으로 가면서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리는 이건 정말 어떻게든 해야할 것 같다. 클라이맥스부터 엔딩까지를 보면 이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부분에 비해서 형편없다.

불만도 많았지만 타이거 우즈의 드라이브샷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두꺼운 책 한권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가치가 있다. 하지은 씨의 작품은 앞으로도 기대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소재와 영감이 빚어낸 작품 자체의 매력 이전에 작가 자신이 가진, 인식하고 힘을 쏟는것으로 극복될 수 있는 약점을 극복하고 나오길 바란다.


by 제라르 | 2009/10/19 16:18 | 한국장르소설 | 트랙백 | 덧글(0)

성검의 블랙스미스, 자위기사단, 뿜었다

그렇다고 이거 재미없거나 짜증나서 때리치겠다는소리는 아니고, 요즘 애니화가 되었다면서 화제가 되길래 별 사전정보 없이 사서 보고 초반에 연달아 튀어나오는 뒤통수를 때려주는 요소들 때문에 이것은 잠깐 휴식과 함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

일단 나를 뿜게 만들어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사소한 잽으로, 도대체 왜 기사라는 사람이 머리 위에 메이드의 머리장식 같은 것을 얹고 있는 것일까?

일본 서브컬처에서 이런 의문 제기하는 게 정말 바보 같지만 굉장히 눈에 걸린다.


2. 그리고 하필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카타나냐.

물론 카타나는 확실히 수준 높은 칼이고, 세계관상 동양권에 일본 비스무리한 나라가 있다고 한다면 그 기술을 가진 자가 나와도 문제는 없다. 다만 갑자기 2콤보째 먹고 살짝 뿜었을 뿐. 하지만 갑옷을 두툼하게 입고 다니는 세계관이라면(하지만 여자의 갑옷은 항상 노출도와 방어력이 비례하겠지) 카타나는 별로 쓸모가 없지 않나. 칼의 질을 말하는 게 아니고 환경과 그에 대응하는 용도 면에서. 차라리 마법검이라거나 필살기라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카타나는 잘 만들어서 강철도 끊어! 라고 주장하면... 물론 이건 역시 작품을 다 보고 이야기할 바고...


3. 실은 처음부터 이게 결정타였다. 자위기사단.

아 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웬만하면 초성체 안쓰고 사는데 이거 미치겠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자위대를 연상케하고 싶어서 갖다 썼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감이 아주, 넘흐, 완벽하게, 우주적으로 미묘하지 않은가. 결국 여기서 뿜고 나서 잠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보려고 했는데 자위기사단 자위기사단 할때마다 움찔움찔하느라 나름대로 정중하게 나오는 설정이고 뭐고 하나도 눈에 안들어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다른 책 좀 읽고 나서 다시 봐야겠다.


by 제라르 | 2009/10/18 16:17 | 잡담 | 트랙백 | 덧글(5)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3권


일단 한 마디 감상 : 왕짜증


이 키리노라는 여자애는 인간실격이 뭔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여동생과, 그 오빠라는 인종에 대한 짜증게이지가 폭발하는 3권이었다. 이런 여자애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인정해주고 봐주자고 하지마. 멀리서 객관적으로 그녀가 이룬 것들만 보는 사람들이면 상관없는데, 옆에 붙어서 마조히스트 변태 쓰레기로밖에 안 보이는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는 오빠라는 네놈이 그렇게 말하지 마라. 작중 캐릭터 따위에게 이렇게 열받게 되다니 대단하다. 이건 '오빠니까, 가족이니까'라고 넘어갈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이쯤되면 할리우드의 가족주의를 삐딱하게 보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질 지경이다.

작품 자체는 글맛도 있고 센스도 있어서 좋다. 오빠의 캐릭터도 초반까지는 그냥 무골충이려니 하고 볼만 했다. 특히 오덕을 넘어 씹덕마저 초월한 인간들을 볼때 일반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점입가경의 중후반부는 사람의 짜증게이지를 맥스로 터뜨려주는 기염을 토했다.

이 물건은 도대체 1, 2권에서 그런 사건들을 겪고도 이렇게까지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악이다. 4권에서도 안 변하겠지. 이런 관계라면 차라리 가족붕괴가 인간적이고 건전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마저 들 지경.


by 제라르 | 2009/10/17 16:00 | 일본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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